마라톤의 유래에 얽힌 에피소트
| 마라톤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했다. | |||||||
| 기원전 490년 그리스의 아테네가 1만명의 병력으로 쳐들어온 페르시아를 격파한 | |||||||
| 대승을 알린 페이디피데스를 기념하기 위한 경기가 바로 마라톤이다. | |||||||
| 제1회 올림픽에서 마라톤 코스는 40km였다. | |||||||
| 1896년 4월 10일 정오 25명의 선수가 메인스타디움을 출발했다. | |||||||
| 2천3백86년전 페이디피데스가 달린 코스가 바로 마라톤 코스였다. | |||||||
| 비탈이 많고 코스는 거칠었다. | |||||||
| 첫 우승자는 그리스의 양치는 목동 루이스였다. | |||||||
| 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레이스라 모두들 성급하게 처음부터 단거리 뛰듯 전력질주해 | |||||||
| 대부분의 선수가 1km를 지나자 마자 기권했다. | |||||||
| 미국과 호주 프랑스 선수가 그나마 페이스를 지켜 선두다툼을 벌였으나 32km지점에 | |||||||
| 있던 가파른 고개에서 모두 기진맥진해 KO되고 말았다. | |||||||
| 이들이 앰뷸런스 마차에 실려가는 동안 양치기 목동 루이스가 1위로 골인했다. | |||||||
| 그의 기록은 2시간 58분 50초였다. | |||||||
| 그런데 이때는 마라톤 코스가 지금과 같은 42.195km가 아니라 40km였다. | |||||||
| 제2, 3회 올림픽은 물론이고 1906년 중간올림픽에도 40km코스가 채택되었다. | |||||||
| 제2회 파리 올림픽 마라톤 경기의 해프닝은 아직도 미스테리이다. | |||||||
| 출발과 동시에 줄곧 선두를 달린 미국선수가 골인해 보니 이미 마라톤 경기는 끝이 나고 | |||||||
| 그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파리 중심가를 한바퀴 돌고 육상경기장인 브와드 불로뉴경마장에 골인하는게 마라톤 | |||||||
| 코스였다. | |||||||
| 그런데 워낙 복잡한 코스라 선수마다 엉뚱한 코스를 뛴 것이 분명했다. | |||||||
| 줄곧 앞서 달렸다는 미국선수의 기록은 4시간 10분대였다. | |||||||
| 그러나 우승은 파리시내 빵집 배달부인 테아토가 2시간 59분 45초로 차지했다. | |||||||
| 그는 다른 빵 배달원 2명과 함께 이 생소한 경기에 나서서 승리하면 열흘간 | |||||||
| 빵을 대신 배달해 준다는 조건으로 내기를 해서 이긴 것이다. | |||||||
| 제3회 올림픽은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렸다. | |||||||
| 파리대회와 마찬가지로 박람회의 여흥게임에 불과한 올림픽이었다. | |||||||
| 세 번째 마라톤은 기록이 후퇴하였다. | |||||||
| 종전 두 대회가 2시간대 였는데 비해 이 대회는 3시간 28분 35초를 기록했다. | |||||||
| 수은주를 36.5도까지 끌어올린 무더위가 기록 후퇴의 주범이었다. | |||||||
| 우승자인 힉스는 결승점 1km를 남기고 코치로부터 흥분제인 스트리킨 알약 한 개를 | |||||||
| 받아 먹고 놀랄만한 스피드로 라스트 스퍼트를 해 1위로 골인했다. | |||||||
| 이 대회는 키셀이드라고 하는 희귀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 |||||||
| 로쯔(미국)는 무더위 때문에 15km 지점에서 졸도하여 구급차에 수용되었다. | |||||||
| 그 차가 결승점 8km전에서 엔진 고장을 일으켜 멈추는 순간에 로쯔는 정신이 들었다. | |||||||
| 그는 차에서 내려 결승점을 향해 역주하여 테이프를 끊었다. | |||||||
|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로쯔는 이 일 때문에 아마튜어 자격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 |||||||
| 그러나 1906년 아테네에서 열린 중간 올림픽에서 기록은 정상을 되찾았다. | |||||||
| 캐나다의 나무꾼 쉐링이 2시간51분26초로 우승했다. | |||||||
| 이는 제1, 2회 올림픽보다 좋은 기록이었다. | |||||||
|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지금과 같은 42.195km를 뛰는 최초의 마라톤이 벌어졌다. | |||||||
| 앞에서 보듯 마라톤은 40km를 뛰는 경기였다. | |||||||
| 역시 런던에서도 화이트시티 스타디움에서 출발하는 40km 코스가 정해져 있었다. | |||||||
| 그런데 출발전 에드워드 7세와 알렉산드라여왕이 마라톤 출발 모습을 직접 보겠다고 | |||||||
| 요청했다. 56명의 선수들이 윈저궁까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
| 원래 코스에서 더 뛰게된 윈저궁까지의 거리가 바로 2.195km였다. | |||||||
| 새코스에서 열린 런던올림픽은 도란도의 비극으로 유명하다. | |||||||
| 선두주자인 이탈리아의 도란도가 결승점 30m앞에서 쓰러졌다. | |||||||
| 스타디움의 10만 관중이 그를 도우라고 외쳤고 심판장이 드를 껴안고 골인시키는 바람에 | |||||||
| 그는 결국 1위로 골인하고도 실격되고 말았다. | |||||||
| 바로 그 뒤를 쫓던 미국의 헤이스가 2시간55분18초로 2위로 골인했다. | |||||||
| 그러나 도란도의 승리가 박탈되어 그는 첫 정규코스의 우승자가 되었다. | |||||||
| 그런데 이 새코스는 1924년 파리올림픽에서 정규코스로 인정되어 지금까지 | |||||||
| 세계의 마라토너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인터넷에서 가져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