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태어날 때부터 소아마비였던 김용기(34·지체장애 1급·아래)씨는 항상 달리는 느낌이 궁금했다. 두 발로 달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다 2004년, 홍성만 선수가 장애인 올림픽에서 휠체어를 타고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나도 달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마침 건강검진 결과로 ‘운동부족’이 나왔다. 김씨는 이때부터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김씨는 2006년부터 발이 아닌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밀며 달리기에 도전했다. 짜릿짜릿했다. 발을 쓰지 못하는 김씨와 같은 장애인은 휠체어에 앉으면 항상 가슴 쪽이 눌려 있다. 비장애인에 비해 두세 배로 숨이 찬다. 마라톤 풀코스를 뛸 때면 35㎞ 지점에서 숨이 차 죽을 것만 같다. “여기서 무너지면 인생을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에 숨을 몰아쉬고 다시 뜁니다.”

세계 최대 시민대회…이지선씨도 합류
푸르메재단 재활병원 기금 마련 나서

그런 투지 덕분에 그는 마라톤 도전 2년째에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에서 3위에 올랐고, 전국체전 100m 달리기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달린다는 게 이렇게 시원하다니.’ 31살 때부터 눈이 점점 흐려와 이제는 어슴프레하게 빛만 감지되는 신현성(48·시각장애 1급·오른쪽)씨는 시각장애인이 된 지 14년만에 달리기에 도전했다. 45살. 중년에 접어든데다, 평발이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고 달리던 신씨는 도전 1년만에 전국장애인체전 10㎞코스, 1500m 두 개 부문에 도전해서 동메달을 땄다. 2007년에는 처음으로 인생에 비유되는 42.195㎞를 달려냈다. 빛을 잃고 성격도 의기소침해졌지만 달린 뒤부터 용기를 얻었다. “달릴 때마다 뺨에 바람이 스칩니다. 전에는 몰랐던 일이예요. 빛을 잃은 대신, 바람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김용기씨와 신현성씨 등 5명의 장애인이 이제는 미국의 대도시를 뛰려 한다. 다음달 1일에 열리는 제 40회 뉴욕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뉴욕 시민마라톤대회는 매년 3만5000명이 참가하고 우승자에게는 13만 달러의 상금을 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민마라톤 대회이다. 2006년부터는 각종 자선단체들이 참여해 지난해까지 5000만 달러의 기부가 이어졌다.

23살 때 교통사고로 전신의 55%에 화상을 입었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현재 뉴욕 콜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지선(31·왼쪽)씨도 이 대회에 참가한다. 이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다.

이씨는 “뉴욕에 이사온 뒤로 항상 센트럴 파크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유튜브를 통해 뉴욕마라톤대회 영상도 봤다”며 “나 자신을 위해서도, 또 우리가 달려서 모은 기금으로 세월질 재활병원을 기다릴 다른 장애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꼭 완주하고 싶다”고 다짐을 밝혔다.

5명의 장애인들이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모은 금액은 모두 푸르메재단 재활병원을 짓는데 사용된다. 현재 전국 재활병원 병상 수는 4천병상에 지나지 않아 장애 입은 환자는 재활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여러 달을 기다려야 한다. 재활치료 필요한 환자 가운데 2%만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푸르메재단 제공

* 이지선씨 동아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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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봄. 미국 유학 첫해가 끝나가던 어느 휴일이었다. 늦잠을 자고 짐을 챙겨 도서관으로 가려는데 어디선가 환호와 응원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집 뒷길로 보스턴 마라톤의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 마지막 지점을 앞둔 마라토너들의 거친 숨소리와 40km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의 노력과 땀과 열정이 느껴져 나는 레이스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공부에,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자신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하는 마라토너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힘들어도 꼭 나의 결승지점까지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어스름 저녁 때가 되어갈 때는 휠체어를 뒤로 향하게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오른쪽 다리로만 밀면서 완주를 향해 가는 모습에 감동되어 또 울었다. 그렇게 3년간 보스턴마라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마라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 왔었는데, 이번에 내가 홍보대사로 있는 ‘푸르메재단’에서 뉴욕 시민마라톤에 참가한다는 소식에 마라톤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내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맨해튼 제일 남쪽인 월스트리트 근처에서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면 나타나는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할렘을 지나 맨해튼 중심에 자리한 센트럴파크에서 42.195km의 레이스를 마치게 된다. 올해 40회를 맞는 뉴욕 시민마라톤은 매년 3만5000명이 참가하고 우승자에게는 13만 달러의 상금을 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시민마라톤이다. 2006년부터는 각종 자선단체들이 참여해 지난해까지 5000만 달러의 기부가 이어졌다. 올해는 총참가자 중 6000명이 2100만 달러를 모금한다는 목표로 달린다. 영화 ‘슈퍼맨’으로 유명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아들 매슈 리브가 120만 명의 미국 척추장애인을 위해 달릴 것이고, 영화 ‘프라이멀 피어’로 유명한 영화배우 에드워드 노턴은 아프리카 마사이 야생 보호 재단을 위해 달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민간 재활병원 설립을 목표로 하는 푸르메재단과 6명의 장애인 마라토너와와 함께 대한민국의 200만 장애인을 위해 달릴 것이다. 그 6명의 마라토너는 청각 또는 시각장애를 가진 분도 있고 휠체어마라톤에 참가하시는 분도 있다. 9년 전 나와 중환자실에서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었던 김황태 씨도 있다. 언제나 누워만 있는 상황인지라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지만, 목소리가 작은 나 대신 큰 소리로 간호사를 불러줘 내게는 전우와 같은 분이다. 전기감전 사고로 양팔을 모두 잃었지만 마라톤으로 새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몇 년 전 광고에 나오기도 했다. 이제 6일 후면 오랜만에 그분을 만나는 감격과 함께 내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이 시작될 것이다. 얼마나 잘 달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4년 전 한발로 휠체어를 밀고 가던 어느 장애인을 떠올리면서 걸어서라도 끝까지 완주를 해보려고 한다. 2009년 11월 1일, 내 발로 밟게 될 42.195km는 대한민국의 모든 장애인을 위한 희망의 응원이길 바라는 마음으로!(마라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www.purme.org/NYrace/)

<미국 뉴욕에서, 이지선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한겨레 신문에서 발취-